트라우마 몸의 기억: 다미주신경이론으로 본 신경계의 방어 반응
어릴 때 겪은 큰 사고는 시간이 지나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몸의 반응으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두 번의 교통사고를 겪었고 6개월간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20대가 되어 남들보다 체력이 쉽게 떨어진다고 느낄 때마다 그 시절을 원망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도 차를 타면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감이 올라올 때가 있고, 운전은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습니다.이런 경험을 돌아보면서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트라우마를 단순히 과거의 충격적인 기억이나 심리적인 상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관계를 공부하면서,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지 않는 순간에도 특정 상황에서 긴장하거나 불편한 감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자동차를 탈 때 느끼는 불편함을 그저 “겁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테크닉과 신체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몸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함께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트라우마와 몸의 기억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다미주신경이론에서는 이러한 신체 반응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차분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트라우마 몸의 기억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트라우마의 몸 기억’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마치 몸의 특정 부위에 과거 사건이 그대로 저장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을 반드시 문자 그대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면 그 순간의 장면이나 생각뿐 아니라 심장 박동, 호흡, 근육의 긴장, 주변 환경에 대한 경계와 같은 여러 신체적 반응도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이후 비슷한 상황이나 단서를 접했을 때 당시의 경험과 연결된 불편감이나 긴장이 다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자동차가 그런 단서 중 하나였습니다. 차를 타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현재의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차 안에 있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나 불편함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그 반응을 오랫동안 없애야 할 문제로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고 합니다. “왜 나는 이것을 무서워하지?”라고 자신을 평가하기보다 “지금 내 몸에서는 어떤 감각이 나타나고 있지?”라고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의 변화가 제가 알렉산더 테크닉을 공부하면서 경험한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미주신경이론의 3가지 반응 경로

다미주신경이론에서는 신경계의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까?
다미주신경이론은 미국의 신경과학자 스티븐 포지스가 제안한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미주신경과 자율신경계의 작용을 바탕으로 인간이 안전과 위협을 어떻게 감지하고 반응하는지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소개되는 다미주신경이론에서는 안전한 상황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 위협에 대한 교감신경성 반응, 매우 압도적인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방어 반응 등을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1. 안전감을 느끼는 상태
주변 환경을 비교적 안전하다고 느낄 때 사람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표정과 목소리를 조절하고 주변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기 쉬워집니다.다미주신경이론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복측 미주신경(ventral vagal)과 관련해 설명합니다. 다만 이 설명을 실제 사람의 상태를 세 가지 단계로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2. 투쟁 또는 도피와 관련된 반응
위협을 감지했을 때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호흡이 변하고 근육이 긴장하는 등의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빠르게 움직이거나 대응하기 위해 몸이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럽고 강한 충격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방어적 반응이 매우 강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3. 움직이기 어려운 듯한 방어 반응
매우 위협적이거나 압도적인 상황에서는 사람에 따라 얼어붙은 것처럼 느끼거나 움직임이 둔해지는 등의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다미주신경이론에서는 이러한 반응을 등쪽 미주신경(dorsal vagal)과 연결해 설명합니다.다만 흔히 인터넷에서 소개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똑같은 순서로 세 가지 상태를 거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인간의 스트레스와 방어 반응은 훨씬 복잡하며, 다미주신경이론의 일부 설명은 학계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론을 제 경험의 원인을 확정하는 공식이라기보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신체 반응을 생각해보는 하나의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고와 지금의 자동차 경험
어린 시절의 사고를 지금의 차에 대한 불편감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지 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경험이나 생활 습관, 현재의 심리 상태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그럼에도 두 경험 사이에 제가 느끼는 연결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차에 타면 몸이 먼저 긴장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현재 안전한 장소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몸에서는 약간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에서 그 불편감을 없애려고 하거나 스스로 겁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지금은 그 감각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깨가 올라가는지, 호흡이 어떻게 변하는지, 손이나 턱에 힘이 들어가는지, 주변을 지나치게 경계하고 있는지를 관찰합니다.
이것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제가 경험하는 몸의 반응을 무조건적인 결함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트라우마를 바라볼 때 주의할 점
트라우마와 신체 반응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몇 가지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과거의 사건을 완전히 잊거나 신체적인 불편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오랫동안 특정 반응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트라우마가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둘째, 의지만으로 모든 신체 반응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고 이후 자동차를 타는 것이 불편하다면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라고 자신을 몰아붙이기보다 현재 나타나는 반응을 관찰해볼 수 있습니다.
셋째,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넓게 사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힘들었던 경험과 임상적인 트라우마 관련 장애는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지속적인 불안이나 공포, 악몽, 일상생활의 어려움 등이 있다면 혼자서 신체 반응의 원인을 해석하기보다는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치료 등 적절한 전문적인 도움을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사고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현재의 모든 신체적 불편을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설명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남겨두고, 지금 느껴지는 감각을 관찰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알아차림을 통해 몸의 반응을 바라보기
알렉산더 테크닉을 공부하면서 제가 특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몸의 반응을 바로 수정하려 하기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차를 탔을 때 긴장감이 올라온다면 “긴장하지 말자”라고 명령하는 대신 현재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호흡이 얕아졌는지, 목과 어깨가 굳어 있는지, 손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있는지를 확인합니다.이런 관찰이 과거의 사건을 지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단 한 번의 알아차림으로 자율신경계가 재조절되거나 트라우마가 해결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저에게 의미가 있었던 것은 다른 부분입니다. 과거에는 자동차에 대한 불편한 반응이 나타나면 그것을 곧바로 ‘두려움’이나 ‘내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해석했습니다. 지금은 그 사이에 하나의 관찰 공간이 생겼습니다.
“지금 몸에서 이런 반응이 나타나고 있구나.”그 정도로 바라보는 것입니다.때로는 몸의 반응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먼저 그 반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경험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며, 심한 트라우마 반응이 있는 경우에는 혼자서 억지로 직면하거나 연습하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적절합니다.
정리하며: 과거의 반응을 나의 결함으로만 보지 않기
어린 시절의 교통사고는 제 삶에서 오랫동안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체력이 떨어진다고 느낄 때면 그때의 입원 생활을 원망하기도 했고, 차를 탈 때 느껴지는 불편감도 단순히 제가 겁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몸과 신경계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 경험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과거의 큰 사건 이후 현재 특정 상황에서 몸의 긴장이나 불편감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반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동안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왔는지를 돌아볼 수는 있습니다.
다미주신경이론 역시 제 경험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정답이라기보다 신체와 감정, 안전감과 방어 반응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하나의 이론적 틀로 보고 있습니다.저에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왜 아직도 이러지?”라는 질문에서 “지금 내 몸에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지?”라는 질문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 이후 나타나는 몸의 반응을 조금 더 차분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몸을 공부하면서 배워가고 있는 방법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